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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가게에 남겨진 마지막 전쟁
"사장님, 이거 바닥 타일이랑 천장 에어컨 배관까지 싹 다 뜯으셔야 해요. 안 그러면 보증금 못 내드립니다."
5년 동안 운영했던 카페 '모퉁이'의 마지막 날, 박 사장은 건물 관리인의 차가운 통보에 말문이 막혔다. 이사 갈 곳의 인테리어 비용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나가야 할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철거 폭탄'을 맞은 것이다.
박 사장이 이 가게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5년 전, 그는 전 세입자가 운영하던 파스타집을 인수했다. 바닥의 고풍스러운 타일과 천장의 시스템 에어컨은 전 세입자가 큰돈을 들여 해놓은 것이었고, 박 사장은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권리금을 넉넉히 주고 그대로 사용했다. 그가 한 인테리어라고는 주방의 집기류를 카페용으로 바꾸고, 벽면에 웨인스코팅을 조금 더한 것뿐이었다.
"아니, 소장님. 저 바닥이랑 천장은 제가 들어올 때부터 있었던 건데요? 제가 설치한 가벽이랑 주방 설비는 다 치웠잖아요."
박 사장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관리인은 막무가내였다.
"계약서 보세요. '임대차 종료 시 임차인은 점포를 원상복구하여 반환한다'라고 되어 있죠? 전 세입자한테 권리금 주고 들어오셨으면 그 사람의 의무도 다 승계하신 겁니다. 원래 이 건물 준공 당시 시멘트 바닥 상태로 만들어 놓고 가세요."
견적서를 받아보니 철거 비용만 800만 원. 이사 갈 가게의 보증금에 보태려던 돈이 공중분해 될 위기였다. 박 사장은 밤새 계약서를 뒤적이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현 시설 상태에서의 계약', '포괄 양수도 계약'... 알 수 없는 법률 용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정말 나는 얼굴도 모르는 전전 세입자가 설치한 것까지, 아니 이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태초의 상태로 돌려놓아야 하는 걸까? 박 사장은 텅 빈 가게 한가운데 서서, 뜯겨 나간 가벽의 흔적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당장 철거 업체가 들어오기로 했는데, 이 억울한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 '내가 설치한 것'만 치우면 됩니다 (단, 예외 주의)
박 사장의 사례는 상가 임대차 분쟁 중 가장 흔한 케이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원칙적으로 임차인은 '자신이 입점할 당시의 상태'로만 복구하면 됩니다. 하지만 계약의 내용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 있으므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핵심 해결 솔루션:
원칙 (대법원 판례 90다카12035): 별도의 특약이 없다면, 임차인은 본인이 설치한 시설물만 철거하면 됩니다.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까지 철거할 의무는 없습니다. 즉, 박 사장은 본인이 설치한 가벽과 주방 설비만 치우면 되고, 전 임차인이 했던 바닥 타일이나 천장은 그대로 두어도 무방합니다.
예외 (포괄 양수도): 만약 박 사장이 전 임차인의 지위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거나,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계약 등으로 인해 원상복구 의무까지 모두 떠안기로 명시적인 합의를 했다면(대법원 2017다268142), 전 임차인의 시설물도 철거해야 할 수 있습니다. 권리금 계약서와 임대차 계약서의 특약사항을 현미경처럼 확인해야 합니다.
협상 전략: 무조건적인 철거 대신, 다음 세입자에게 시설을 넘기는 **'시설 인수'**를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입점 당시의 사진'과 판례를 근거로 임대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방어가 필요합니다.
📝 원상복구의 법적 기준과 실무 가이드
점포 이전이나 폐업 시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원상복구의 정확한 범위를 아는 것이 힘입니다. 임대인의 무리한 요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실무 팁을 상세히 정리해 드립니다.
1. '원상복구'의 정확한 정의 ⚖️
법적으로 원상회복이란, **'임차인이 들어왔을 때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준공 시점)의 공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Case A (공실 입점): 텅 빈 상가에 들어와서 인테리어를 했다면? -> 나갈 때 다시 텅 빈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Case B (시설 인수 입점): 인테리어가 된 상태에서 들어와 권리금을 주고 썼다면? -> 내가 추가로 설치한 것만 철거하면 됩니다. (단, 계약서에 '원상복구 의무 승계' 특약이 없어야 함)
2. 권리금과 원상회복 의무의 관계 (가장 큰 오해) 💸
많은 임대인이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으니 전 사람의 의무도 승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권리금 거래가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원상회복 의무까지 승계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권리금: 영업 가치, 시설 사용료에 대한 대가이지, 철거 의무를 사 온 것은 아닙니다.
주의할 점: 최근 일부 판례에서는 프랜차이즈 영업 양수도 등 아주 구체적인 경우에는 전 임차인의 시설 철거 의무를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서에 **"임차인은 전 임차인의 원상회복 의무를 승계한다"**라는 독소 조항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3. 자연 마모(통상 마모)는 복구 대상이 아니다 🏚️
임대인이 "바닥이 긁혔다", "벽지가 더러워졌다"며 새것으로 교체해 놓고 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낡은 것(통상 마모)은 임차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임차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낡은 상태 그대로 반환하면 됩니다.
단, 고의나 과실로 파손한 부분(깨진 유리창, 담배 빵이 난 바닥 등)은 변상하거나 수리해야 합니다.
4. 철거 비용 줄이는 실전 팁 💰
다음 세입자 구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시설을 그대로 쓸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철거 비용이 '0원'이 됩니다.
견적 비교: 철거 업체는 최소 3군데 이상 견적을 받으세요. '폐기물 처리 비용'이 견적의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폐기물 양을 줄일 방법을 상의하세요.
부분 철거 협의: 임대인과 협의하여 살릴 수 있는 부분(천장 텍스, 바닥 데코타일 등)은 남겨두고 철거하는 쪽으로 유도하세요. "다음 세입자도 바닥은 필요하지 않겠냐"라고 설득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계약서에 "임대차 종료 시 현 상태로 반환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경우엔 철거 안 해도 되나요?
👉 A. 네, 유리한 조항입니다. '현 상태로 반환'이라는 특약은 임차인이 나갈 때 별도의 원상복구 의무를 지지 않고, 현재 있는 그대로 나가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임대인이 이를 "들어왔을 때의 현 상태(즉, 공실)"라고 우길 수 있으므로, 계약 당시의 사진 증거가 필수적입니다.
Q2. 임대인이 지정한 철거 업체만 이용하라고 강요합니다. 비용이 너무 비싼데 따라야 하나요?
👉 A.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원상복구의 의무는 있지만, 누구에게 시킬지는 임차인의 자유입니다. 임대인이 지정 업체를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 행위일 수 있습니다. 다른 업체의 견적서를 제시하며 "이 가격에 맞춰주지 않으면 내가 데려온 업체에서 하겠다"라고 통보하세요.
Q3. 에어컨이나 간판을 다음 세입자가 쓴다고 해서 두고 왔는데, 나중에 임대인이 치우라고 연락 왔습니다. 책임져야 하나요?
👉 A. 합의 내용에 따라 다릅니다. 임대인, 현 임차인, 신규 임차인 3자가 "시설물을 신규 임차인이 승계한다"는 합의를 했다면 책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규 임차인과의 계약이 파기되거나, 임대인에게 명확한 확답을 받지 않고 두고 나왔다면, 추후에라도 철거 비용을 청구당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서면으로 '시설물 인수 확인서'**를 받아두세요.
Q4. 바닥에 본드 자국까지 다 갈아내라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 A. 통상적인 범위 내에서만 하면 됩니다. 데코타일 등을 제거하고 남은 본드 자국이나 샌딩 작업은 '원상복구'의 범위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세입자가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기본 바닥 상태'까지는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닥을 새로 콘크리트 타설하라는 등의 과도한 요구는 거절할 수 있습니다.
Q5. 철거하다가 옆 가게에 피해를 줬습니다. 누가 책임지나요?
👉 A. 원칙적으로는 공사를 진행한 철거 업체(시공사)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임차인이 무자격 업체를 썼거나, 공사 감독을 소홀히 했다면 임차인에게도 관리 책임이 물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거 계약 시 **'공사 중 발생하는 대인/대물 피해는 시공사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조항을 넣고,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된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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